Ch. 20 The Justice of God’s Generosity in Romans

ㅇ 도입
– 중세의 주석가들은 로마서의 주제가 하나님의 정의(justitia dei)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중세 이후의 학자들은 그것을 주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나의 시도는 중세의 해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로마서의 주요 주제는,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데 나타난 하나님의 너그러움이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차별이 없다는 점에서 정의롭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10:12).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롬2:11). 바울의 논변은 신약의 아가페가 돌봄(care)이라는 나의 주장을 지지하는 주된 예이다.
– 유대인과 이방인은 죄를 지은 점에서 똑같다. 하나님은 둘 다에게 유죄를 선고하신 점에서 공정하다(just).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셔서 둘 다에게 의롭다 함을 제공하신다.

ㅇ 로마서의 주요 주제
– 로마서는 초반부터 공평(impartiality) 주제를 다룬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수네)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디카이오스한 사람)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6).
– 여기 헬라어 ‘디카이오수네’는 ‘정의(justice)’의 뜻도 있고 ‘의(righteousness, rectitude)’의 뜻도 있다. 많은 성경이 이 단어를 ‘의’로 번역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에게나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인가? 그것은 의가 아니고 정의(justice)이다.
– N. T. Wright는 여기서 디카이오수네가 뜻하는 것은 ‘언약적 충실함(covenant fidelity)’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면 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the faithful person will live by faith’가 되는데 이것은 같은 뜻을 가진 두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당연한 말을 쓴 것밖에는 안 된다. 그리고 바울이 충실함을 의도했다면 그 뜻을 정확히 나타내는 ‘피스티스’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굳이 디카이오수네를 썼을까?
– Wright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같이 구원하시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을 충실히 지키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에 따르면 바울은 아브라함 언약의 내용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 않고 그 언약을 지키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에 들어 있는 정의이다. 3:29-30에서 바울은 그 점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죄인이고 이방인은 그 마음에 새겨진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해서 죄인이다. 둘 다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은 부당하게 대우를 받으신 것이고 불의를 당하신 것이다.
–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항상 요구하신 것은 믿음이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는 믿음의 형태가 토라를 순종하는 것이었는데 완전한 순종은 메시아 예수님이 오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실 때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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