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16: 사춘기는 불필요한가

본문: 롬8:28

2012년 7월 15일

Christ Covenant Church 오후예배

한재일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책 제목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제목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제목을 듣는 순간 바로 공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맞아! 십대 아이들은 외계인같아.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말이야.” 하고 말입니다.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참으로 외계인같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잘 지내던 아이들이 갑자기 돌변합니다. 말도 안 하고 말도 안 듣고 퉁명스럽고 짜증내고 반항하고 집 바깥으로 돌고 사고 치고…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사고체계와 행동체계를 가진 외계인들같습니다. 뭔가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접촉점이 없는 외계인들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사춘기를 악몽처럼 생각하면서 그냥 하루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랍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예 십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 그리고 꼬마에서 바로 의젓한 성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랍니다. 왜 꼭 그 괴물같은 사춘기를 거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성숙해지는 데 불필요한 시기를 괜히 넣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는 일생 중에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시기가 없습니다. 사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모들을 골탕 먹이려고 괴물같은 사춘기를 만드시지도 않았고,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시려고 그런 어려운 시기를 주시지도 않습니다. 자녀들의 사춘기는 분명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해가 되는 시기가 아니고 유익이 되는 시기입니다. 좀 더 명시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사춘기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시기이고 우리 부모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시기이고 우리 부모들에게도 꼭 필요한 시기입니다.

먼저, 사춘기는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서 우리와 따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평생 품에 끼고 살려고 키우지 않습니다. 평생 아이들의 재롱을 보면서 살려고 키우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아이들을 잘 키워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딸들은 시집 보내고 아들들은 독립시켜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우리를 떠나서 살게 하려면 그들이 우리가 없이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육체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되니까 상관 없지만 정신은 우리가 책임지고 어른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릴 때 여러 가지 규칙과 교훈들을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 욕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어기면 벌을 내립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명들을 잘 따라서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외적인 계명으로만 끝나고 아이들 마음에 새겨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모가 지켜 보고 있을 때는 아이들이 그 계명들을 잘 지키지만 부모가 옆에 없을 때는 그 계명들을 내 던지기 때문입니다. 사춘기에 부모의 가르침을 내면화하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떠났을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 계명들은 부모들의 계명이었지 결코 자신의 계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몸에 안 맞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버리듯이 그 거추장스러운 계명들을 벗어 버립니다. 그 계명들은 부모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그 계명들을 내다 버립니다.

사춘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의 계명이 자녀들의 계명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기간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그 동안 부모에게서 들었던 여러 계명들을 다시금 돌아 보게 됩니다. 그 계명들이 과연 말이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제 자신의 머리가 자랐기에 또 주위에서 새로운 지식들을 많이 습득하기에 부모의 계명이 맞는 것인지 이성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또 이제 부모의 품에서 조금씩 벗어나 세상을 더 접하게 되면서 부모가 가르쳤던 계명을 세상에서의 삶에 하나씩 적용을 해 봅니다. 부모의 교훈과 가르침이 과연 삶에 적용 가능한 것인지 부모의 가르침을 따랐을 때 과연 문제가 해결되는지 실험을 해 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계명이 아닌 자기의 계명을 만들어 갑니다. 부모의 계명 중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계명으로 받아 들이고 그 타당성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버립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계명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부모에게서 독립했을 때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사춘기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의존적이어서 무엇 하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자신 안에 기준도 없고 가치관도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부모의 기준에 따라서만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춘기는 아이들이 주체적인 어른이 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한편, 아이들이 사춘기 때 부모의 가르침을 일부는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이고 일부는 버리게 되면서 부모와 갈등이 일어 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괘씸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합니다. 그 동안 자신이 그렇게 애써서 가르쳐 왔는데 자식이 그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려는 아이와 그 가르침에 머물게 하려는 부모 사이에 긴장, 갈등, 분노, 미움 등등이 일어 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 동안 자신의 말을 잘 듣던 아이가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니까 화가 나고, 자식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같은 가르침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화가 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어디서 이상한 것을 배워 와서 집안의 전통적 가르침을 대체하면서 위험한 길을 가니까 고삐를 틀어 쥐게 되고,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 지도 모르고 고리타분한 인습을 강요하니까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부모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자신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습니다. 자신이 틀리고 자식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염두에 두어야 할 다른 하나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세대에 절정을 맞이하고 그 후에는 쇠퇴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를 이어서 계속 발전하는 나라입니다. 누룩이 빵을 부풀게 하듯이 확장되고 겨자 씨 한 알이 거대한 나무로 자라듯이 자라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우리와 다른 삶을 추구해 나갈 때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가 지금 세대를 넘어서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정의 차원에서 보면 자식이 부모를 넘어서야 하나님 나라가 진전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사춘기 때 부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춘기 아이들이 우리가 하는 말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가르치지 말고, 부모가 하는 말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의를 제기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춘기에조차 부모가 하는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아이들은 착한 자식일지는 몰라도 뛰어난 자식은 아닙니다. 그 아이는 부모를 뛰어 넘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부모의 수준에 머무는 아이입니다. 아니 오히려 부모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아이입니다. 부모는 자기 나름의 가치관을 세워서 그것을 자식에게 가르쳤는데 자식은 자기 나름의 가치관조차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크리스천으로 자랍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크리스천으로 자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더 발전시키려 하고 있는데, 그 아이는 과거의 사상을 고수함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출현하는 것을 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춘기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우리에게 도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이 도전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의제기와 반항은 분명히 다릅니다.

다음으로, 자녀들의 사춘기는 부모에게 아주 큰 유익이 되는 시간입니다. 사춘기는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혹은 꼭꼭 숨겨 놓았던 부모의 문제가 표면에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그 동안 부모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죄성이 하나 하나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습성은 아주 나쁜 죄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우리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으니 다른 사람은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아주 교만한 태도로서, 원죄를 지을 때의 아담의 교만한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모의 죄성이 아이들이 어릴 때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그 가정은 그냥 부모는 아이들을 잘 다스리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주 이상적인 가정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기가 센 아이들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이었던 부모에게 이제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부모에게 대들거나 아예 집을 나가 버립니다. 한편 기가 약한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철권통치 아래에서 아주 수동적으로 지냅니다. 불의한 권위에도 항거할 줄 모르는 나약하고 소극적인 청년으로 자랍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부모의 죄가 아이들의 문제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춘기에는 이렇게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부모들의 죄가 드러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녀들이 명문대 입학에 목 매는 것에서 드러나고,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성향이 자녀들의 교만한 태도에서 드러나고,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언어 습관이 자녀들이 폭력성과 공격성을 띠는 데서 드러나고, 부도덕한 성의식이 자녀들의 성적 문란함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사춘기는 그 동안 우리 안에 깊숙히 숨겨져 있던,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우리조차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죄들을 처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없었다면은 그냥 지나쳐 버렸을, 그래서 나중에 무시무시한 형태로 자라날 죄들을 처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 양육은 동시에 부모 양육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양육하십니다. 우리의 자녀양육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미성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자녀양육을 통해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데는 아직 미숙한 사람들입니다. 리더십에 있어서는 아직 미숙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자녀양육을 통해서 리더십을 가르치십니다. 리더십을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대단한 것을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조직의 리더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리더십은 조직의 수장이 아닌 경우에라도 필요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 한 명은 리더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보다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끌게 됩니다. 어떤 큰 조직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리더십을 가르치시는 데 어떻게 자녀양육을 이용하실까요?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과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식은 아주 비슷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유년기 때, 청소년기 때 그리고 성년기 때 서로 다르게 키웁니니다. 마찬가지로 리더십도 유년기적 리더십, 청소년기적 리더십, 성년기적 리더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년기적 리더는 명령을 내리면서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리더입니다. 명령 불복종은 물론이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조직원들에게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을 통제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직을 이끌어 가려 합니다. 이런 리더십은 우리가 유년기의 아이들을 키울 때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직 어려서 잘못 판단하고 행동하기 쉬운 아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아이들을 가능한 한 많이 통제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의 가치관을 심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키우려고 합니다.

다음으로 청소년기적 리더는 사람들에게 자율성을 꽤 허용합니다. 사람들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일을 하도록 허용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그려 놓은 큰 틀 안에서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틀을 벗어나려고 하면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자신의 틀 안으로 다시 들어 오게 만듭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들여서 자신의 틀을 약간 바꾸거나 넓히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틀을 고수하면서 사람들을 그 틀 안에서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런 리더십은 우리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키울 때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을 키울 때 규칙과 징계로 키우던 전과 달리 이제는 대화와 설득을 주로 사용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꽤 주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이것저것을 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이 맞으면 자신의 잣대를 조금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의 틀 안에서 키웁니다.

마지막으로 성년기적 리더는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자율성을 허용합니다. 아주 심각한 일이 아니면 사람들을 통제하지도 않고 그들의 일에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합니다. 수직적 관계이던 전 단계들과 달리 이제는 수평적 관계가 많이 강조됩니다. 전에는 리더가 이끌고 조직원들이 따르는 형태였는데 이제는 리더와 조직원들이 같이 협력하는 단계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자신의 틀대로 사람들을 강하게 이끄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비전도 일방적으로 자신이 만들기보다 조직원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만들어 갑니다. 이런 리더십은 우리가 성인 자녀들을 대할 때와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우리는 그들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주 심각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는 그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는 수직적이라기보다 수평적입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조언할 뿐 그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그들과 협력할 뿐 그들을 자신의 아랫사람처럼 부리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세 가지 리더십 중 가장 성숙한 리더십은 성년기적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성숙한 것이 청소년기적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성년기적 리더십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에 따라서 유년기적 리더십이나 청소년기적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성원들이 다 미성년자이거나 혹은 성년자라고 하더라도 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유년기적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년기적 리더십이 제일 필요하지만 다른 두 리더십도 필요한데, 부모들은 이런 리더십들 즉, 유년기적 리더십, 청소년기적 리더십, 성년기적 리더십을 자녀를 양육하면서 차례로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어떤 조직을 이끌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원리는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자녀를 각 단계를 거치면서 잘 키운 사람들은 교회도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목사와 장로의 자격에 가정을 잘 다스리는 조건이 들어가 있는 이유입니다.

사춘기의 자녀들을 둔 많은 사람들이 한탄을 하면서 그 폭풍같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랍니다. 그들에게 자녀들의 사춘기는 끔찍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자녀들과 사이가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시간이고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서 바보같은 일들을 저지르지 않을 미래를 고대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빼 버리고만 싶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만드십니다. 부모에게는 끔찍해 보이는 자녀들의 사춘기도 하나님께는 자녀들을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시는 시간이고 우리 부모도 더 훌륭한 리더로 키우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모른 채 아이들과 매일 신경전만 벌임으로써 아이들이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서도 안 되고 우리들이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사춘기가 불행의 시기가 아니고 행복의 시기가 되고 재앙의 시기가 아니고 축복의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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