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식 이해 1: 언약과 예배

본문: 창2:20-25
2009년 12월 6일
Christ Covenant Church 오후예배

 

우리 교회의 예배는 다른 교회들과 달리 예배형식이 꽤 많고 복잡합니다. 물론 카톨릭이나 정교의 교회들도 복잡하기는 하지만요. 그럼 왜 이렇게 형식이 많고 복잡한가, 또 왜 이런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이 시간과 다음 시간에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배는 언약갱신 의식이다는 것입니다.

그럼 첫번째 질문, 즉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부터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영지주의가 뭔지 아시지요? 기독교 초기에 세력을 떨쳤던, 대표적 이단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은 불완전한 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이 불완전한 육체에서 정신이 해방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즉, 그들은 정신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보면서 정신을 우월한 것, 육체를 열등한 것으로 봐서 중요한 것은 정신이지 육체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은 그 후에도 기독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지 우리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 때도 우리의 마음과 예배내용이 중요하지 우리의 옷차림이나 예배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미 잘 알고 계시듯이 이런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결혼할 때 청바지 입고 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들에 놀러 가는데 정장 차려입고 가는 사람 보셨습니까? 아니면 록 콘서트에 정장입고 가는 사람 보셨습니까? 클래식 음악회에 힙합바지 입고 가는 사람 보셨습니까? 우리의 옷차림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반영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식도 내용을 반영합니다.

사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이 없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듯이 형식이 없으면 내용을 제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형식이 없으면 예배내용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습니다. 사실 예배형식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형식에 아주 자유롭다고 하는 교회의 예배에도 최소한의 기본 형식은 있습니다. 아무 형식도 없이 즉흥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은 없으니까요. 문제는 형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어떤 형식을 따르느냐입니다. 애초에 형식이 없을 수 없다면 그 형식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 더 적합한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교회는 어떤 형식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데 가장 적합한지를 탐구하였고, 그 결과 현재의 형식이 예배에 가장 맞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현재의 우리 교회 예배형식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요? 답은 ‘예배는 언약갱신 의식이라는 관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입니다.

그러나 언약갱신 의식으로서의 우리교회의 예배형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예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Jeffrey Meyers는 예배에 대한 그의 탁월한 책 The Lord’s Service에서 예배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예배의 목적을 각각 전도, 교육, 종교적 체험, 경배로 보는 관점들입니다.

먼저, 예배의 목적을 전도로 보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는 주로 교회성장에 관심이 많은 교회들입니다. 이들은 예배의 주 목적은 불신자들을 회심시켜 기독교인이 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예배는 전도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옮겨 갑니다. 예배의 모든 구성이, 찬양부터 시작해서 기도, 설교 등등이 모두 전도에 촛점이 맞춰집니다. 그리고 예배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회심자가 나왔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구도자 예배를 지향하는 릭 워렌 목사님의 교회가 그런 식입니다.

두번째로, 예배의 목적이 교육이라고 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적인 장로교, 침례교, 개혁교회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은 예배의 주 목적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가르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예배의 정점이고 다른 모든 예배순서들은 설교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치부됩니다. 이런 예배도 중심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세번째로, 예배의 주 목적을 종교적 체험으로 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예배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체험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소위 ‘은혜로운’ 찬양과 감동적인 설교를 통해서 예배자들이 감격하게 합니다. 소위 ‘은혜받았다’고 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예배 역시 촛점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배의 목적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있다고 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입니다. 이들은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것이 아니고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굉장히 경건하게 들리지요? 실제로 이 관점은 예배의 촛점을 우리 가 아닌 하나님께 둔다는 점에서 앞의 세 관점보다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관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유한하고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나님에게서 받아야만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죠.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고 구속을 받아야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네번째 개념은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를 낮추는 것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우리를 높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촛점을 하나님에게만 맞추고 우리의 필요를 무시하게 만들어서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불필요한 원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단어 ‘예배’라는 말도 우리의 예배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배’의 문자적인 뜻은 ‘예를 갖추어 절하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배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영어단어 service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섬김’인데, 이 한 단어로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말씀, 성찬 등으로 우리를 섬기시는 것과 우리가 찬양, 헌금 등으로 그 분을 섬기는 것 둘 다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배를 언약갱신 의식으로 생각하면 앞의 네 가지 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언약갱신 예배의 목적은 성찬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언약갱신 의식을 통하여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받아주셔서 우리와 화해한 표시로서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면 앞의 네 가지 관점에서 강조했던 것들을 다 만족시키면서도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갱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이번 시간에는 언약이 무엇인가, 또 언약의 구조와 우리교회의 예배형식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언약이 무엇입니까? 사실 언약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여러 언약들과 그 배경을 잘 살펴보면, 언약은 ‘사랑의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헤세드’라는 말을 아십니까? 구약, 특히 시편에 무수히 나오는 히브리어인데요, 영어로는 ‘steadfast love,’ ‘loving kindness’ 등으로 번역되어 있고 우리 성경에는 ‘인자’ 또는 ‘인애’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과 다른 언약적 사랑인 것입니다.

사실 언약은 그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삼위일체 안에 있는 삼위하나님 서로간의 사랑이 언약적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을 때 기본적 수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도, 노아와도, 아브라함과도, 이스라엘과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새언약으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 사이에 관계를 맺을 때는 어떻습니까? 기본적인 수단이 무엇입니까? 역시 언약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는 인간관계는 무엇입니까? 부부관계입니다. 그러면 부부는 무엇으로 맺어집니까? 결혼이지요. 결혼은 성경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의 언약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관계, 즉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관계,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기본은 언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구성하고 유지해 가는 데 중추를 이루는 이런 기본적인 수단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삼위하나님 안에 원래 없던 것인데 천지를 창조하고 나서 또는 인간이 타락하고 나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 만물은 무에서 창조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것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속성의 반영입니다. 결과적으로 언약도 하나님의 속성의 반영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언약적 사랑, 우리가 부부간에 나누는 사랑, 우리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모든 사랑은 삼위하나님 안에 있는 언약적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간에 자기부인, 겸손, 상대방의 영광을 구하는 것, 헌신 등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심으로써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유의 주로 세우심으로써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자기희생적 사랑이 우리 모든 사랑의 기초가 됩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삼위하나님의 그 영원하고 부요한 사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참여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그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44). 이런 변화는 언약의 독특한 구조에 따라 이루어지고 우리교회의 예배는 이런 언약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Jeffrey Meyers에 따르면, 언약은 다음 다섯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대상을 정하심
2) 분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심
3) 말씀하심: 순종해야 할 계명을 주심.
4) 표(sign)와 인(seal)을 주심
5) 언약의 지속성을 마련하심

구체적으로 성경의 언약들이 이런 구조를 따르고 있는지 예를 들어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시는 장면을 보십시오 (창2:20-25). 그 순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1) 대상을 정하심: 아담을 택하심
2) 분리와 새창조: 하와를 만드심. 이는 아담이 옛사람에서 분리되어 새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함. 즉, 전에는 홀로 사는 존재, 이제는 하와와 더불어 사는 존재.
3) 말씀하심: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 아담이 아내와 살면서 지켜야 할 계명을 주심. 즉, 남자는 부모의 권위를 떠나 자신의 권위와 책임에 기초한 새 가정을 이루어야 함. 새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통하여 기존 가정보다 더 발전되고 성숙되어야 함.
4) 표와 인을 주심: 이런 새로운 친밀한 부부관계, 전인격적인 결합의 징표와 인은 서로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즉 부부간의 육체관계임 (25절).
5) 언약의 지속성: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28). 자손을 통하여 언약이 지속됨.

다음으로 아브라함 언약의 요소들을 보십시오(창세기 12, 15, 17, 22장).

1) 대상을 정하심: 아브라함을 택하심(12:1)
2) 분리와 새창조: 친족과 고향으로부터 분리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심. 새로운 땅과 새로운 이름(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을 주심(12:1)
3) 말씀하심: 가나안 땅, 많은 자손, 아브라함을 통한 만민의 축복 등을 약속하시고 (12:1-3),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해야 함을 말씀하심 (17:1-2)
4) 표와 인을 주심: 언약의 표로서 할례를 명하심(17:9-11)
5) 언약의 지속성: 언약을 계속 이어갈 자손을 약속하심 (18:10)

아담과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언약이 다섯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언약구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언약 당사자들을 변화시키심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면, 예배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예배형식도 언약의 구조에 따라 구성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교회의 예배는 언약의 구조에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2

우리교회 예배 순서와 언약구조 비교
1) 예배로 부르심 – 변화시키실 대상을 정하시고 부르심
2) 죄의 회개와 용서 – 죄의 회개를 통하여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만드심
3) 설교 – 새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계명을 말씀하심
4) 성찬 – 새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은 표와 인을 주심
5) 축도 – 예배자가 새로 맺은 언약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을 선포하심.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교회의 오전 본예배는 언약갱신예배입니다. 우리가 오후에 한국어로 예배를 드리지만 이것은 언약갱신예배가 아닙니다. 오후예배 때는 아시다시피 죄의 회개, 죄사함의 선포, 성찬, 축도 등 예배의 주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오후에 예배를 드리니까 오전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혹시나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1 이 설교는 Jeffrey J. Meyers의 The Lord’s Service: The Grace of Covenant Renewal Worship에 기초하고 있음.
2 다른 많은 전통적인 교회도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는 채 언약구조에 따라 예배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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