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본문: 마4:1-4

2015년 2월 1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목사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심하고 세례를 받으시니 성령님께서 예수님에게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셔서 사탄에게서 세 가지 시험을 받게 하셨는데, 오늘 본문은 그 첫번째 시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굶주리셨을 때에 사탄이 다가와서 옆에 있는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서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이 시험은 언뜻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미 40일 금식이 끝났으니 자유롭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멀리 가서 빵을 구해 먹는 대신에 옆에 있는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서 먹은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시험이라고 부르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이 말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길래 시험이 되는 것일까요? 사탄이 이 시험으로서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 차근차근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탄은 다음의 말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을 삼위하나님의 제2위격인 성자(聖子)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탄의 말을 “네가 성자 하나님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네가 하나님인 것을 증명해 봐”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 해석은 오늘 본문이 예수님의 세례를 묘사하고 있는 바로 앞의 문단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 문단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때에’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앞 문단의 내용 바로 후에 일어난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말한 ‘하나님의 아들’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 사랑하는 아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께서 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지? 그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것을 해 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살펴 봤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성자 하나님보다는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둘째,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이 성자 하나님을 뜻한다는 해석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응대하신 내용과도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응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는데 예수님께서 ‘사람’이라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메시야를 떠 올렸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메시야를 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약에 아직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명료하게 나타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의 아들을 성자 하나님과 연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성자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게 된 것은 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이 명확히 계시된 후였습니다.

이제 사탄이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지금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을까요? “네가 메시야로 임명되었지? 한번 네 능력을 보여 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야는 원래 그런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는 존재였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사는 얼마 안 되는 보리빵을 몇 배로 늘리는 기적을 행하여 백 명을 먹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습니다(왕하4:42-44; 4:17-37). 그리고 모세는 강물을 피로 바꾸기도 했고 티끌을 이로 바꾸기도 했습니다(출7:20; 8:16-17). 사탄도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메시야의 능력을 시험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메시야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돌을 빵으로 바꾸는 정도는 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응대하신 내용을 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 보면 사탄이 시험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선뜻 이해가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언뜻 보면 빵과 말씀을 대조했으니 육적 양식과 영적 양식을 대조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음식만 먹어서는 살 수 없으며 성경말씀도 먹어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보다는 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한 것인데 그 구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의 원래 뜻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1 성경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 성경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도 포함합니다. 사실 우주 전체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명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은 생존의 기반을 하나님께 둔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절인 신명기 8장 3절의 맥락을 살펴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7-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가나안 땅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말한 후 11-14절에서는 그들이 그 풍요를 즐기게 된 후에 하나님을 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7-1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만나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광야에 들어가기 전에도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혹자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으니까 자신들의 능력을 믿지 않고 어찌됐든 신을 의지하며 살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상숭배도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우상을 조종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광야(사막)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재배할 수도 없고 동물을 사냥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먹을 물도 없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 만나는 그들의 노력과 관계 없이 하늘에서 매일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만나를 먹으면서 산다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이 자신들이 아닌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설사 자신들이 가꾸고 재배해서 양식을 먹는다고 해도 결국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교훈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마치 그 땅을 자신들의 힘으로 차지한 양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바알 등의 우상을 조종해서 풍요를 얻으려고 하거나 외교적인 꾀를 내서 외국의 힘을 이용하여 생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버린 결과 마침내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실패를 되돌리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똑같은 시험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메시야로서 자신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냐의 시험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다가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는 전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메시야의 기본 자격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가장 먼저 시험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사실 아담이 사탄에게서 받은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아담도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도록 유혹을 받았습니다. 아담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훌륭한 자연환경과 넘쳐나는 먹거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생명나무 열매도 받았습니다. 아담의 생존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아담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아니 독립하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부추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 더 풍요롭게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부추겼습니다. 결국 아담은 사탄의 이 꾐에 넘어가서 자신의 힘으로 사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세상에 죄와 고통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시험은 새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시험을 다시 받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 아담으로서 아담의 시험을 다시 받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탄의 간교한 시험에 예수님께서는 ‘기록되었으되’라는 표현이 잘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너의 힘을 의지할 것이냐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냐’의 시험에 걸맞게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죄성을 가지지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무기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려 하셨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있는데도 자신의 생각을 따르다가 사탄의 시험에 넘어간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다가 멸망한 사실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시험과 유혹을 당하는 순간에 무엇을 따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생각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는 것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자신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겉보기에는 여러분이 잘 사는 것은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현상 뒤에 감춰진 본질을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입니다. 만나를 얻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았듯이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1

김성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2003,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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