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하다

본문: 마3:5-8

2014년 11월 30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곧 오셔서 천국을 세우실 것이니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1 이 말을 듣고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죄를 자복하고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고자 자신의 죄를 고백해서 자신을 정결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왜 하필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을까요? 몰려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려면 굉장히 많은 물이 필요한데 주위에 요단강만큼 물이 많은 곳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 요한이 그런 현실적 이유만을 고려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역사에서 요단강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굉장히 크기 때문입니다. 먼 옛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낼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곳은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땅이요 젖과 꿀이 흘러서 풍족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때 건넌 강이 바로 요단강이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할례를 받았습니다(수5:2-5). 그런데 지금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친 후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신약판 할례인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듯이, 이제 사람들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례를 받고자 오는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왔다고 되어 있어서 그들이 온 목적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문도 그렇게 번역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이 그들이 세례 받으려는 목적말고 다른 목적으로 왔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5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세례요한을 믿지 않았다고 기술되어 있는 것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 한몫 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드니까 그 현상을 관찰하러 또는 조사하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믿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중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을 믿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들이 세례요한의 메시지에 끌려서 세례를 받으려 하다가 그에게 책망을 들은 후에 더 이상 그를 믿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단지 관찰이나 조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 본문에 더 강하게 암시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고 질책했습니다. 그들이 그 곳에 온 목적이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 곳에 회개를 하러 왔다고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사람들이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고 11절에서는 세례를 회개와 관련 짓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세례요한을 관찰하거나 조사하러 오지 않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러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2

그들도 분명 구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엘리야같은 모습으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오시는 날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지만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인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말3:1-5; 4:1-2)3. 그래서 그들은 세례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천국에 들어가는 한편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러 오는 그들을 세례요한은 엄하게 책망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여기서 우리는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을 그냥 심한 욕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serpents)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세례요한이 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표현이 ‘사탄의 자식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4 세례요한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왜 이렇게 심하게 책망했을까요?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과 귀족들로 구성된 지배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헬라 문화를 받아들이고 하스몬 왕가, 로마, 헤롯 등과 결탁했기 때문에 늘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는 현세가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관심은 현세의 권력과 부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관리하면서 성전에서 쓰는 물품들을 거래하는 데서도 막대한 이득을 챙겼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로서 또 제사장들로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기보다는 이렇게 현세의 탐욕만 채우는 그들을 세례요한이 강하게 책망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한편 바리새인들은 율법연구에 힘을 쏟고 그로부터 자신들이 만들어낸 규율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 열심이 얼마나 컸던지 그들은 성경이 일반 유대인들에게 요구했던 수준을 넘어서 성전에서 복무하는 제사장들에게 요구했던 것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결규례를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교회는 이들이 이렇게 율법을 열심히 지킨 이유는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개인구원에만 관심을 두었던 율법주의자들이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5 그러나 N. T. Wright 등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관심사는 개인구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위대한 전통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독립된 신정국가로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충실히 지킬 때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원수들을 멸망시키시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는 옳았습니다.6

그러면 세례요한은 왜 이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거세게 책망했을까요? 율법준수를 소리 높여 외치는 그들이 사실은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마23).7 그들은 외적인 경건에는 능했으나 마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찼었습니다(마23:25-26).8 그리고 그들은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들이라고 정죄하면서 자신들을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대인들과 구별했습니다(눅18:9-14).9

결국 세례요한은 천국에 들어가고자 세례 받으러 나온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호되게 책망했는데,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현세적인 탐욕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위선과 교만 때문에 책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참으로 천국에 들어가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먼 길을 걸어서 요단강까지 나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들도 천국에 들어가려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참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탐욕과 위선과 교만을 여전히 버리지 않은 채로 회개했다면서 세례를 받으려 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맺지 않으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세례를 받으려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세례요한 당시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맺지 않으면서 회개했으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10 마치 내세도 없고 부활과 심판도 없는 것처럼 현세의 욕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양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회개한 크리스천이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대판 사두개인들입니다. 세례요한의 말을 빌자면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또 오늘날 교회 안에는 위선과 교만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온갖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행함으로써 훌륭한 신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보다 종교행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교리에 밝은 사람들은 교리가 취약한 다른 교단과 다른 크리스천들을 업신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마23:23). 그들은 교만한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이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현대판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도 역시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는 사두개인들과 달리 현세의 탐욕에 빠지지 않고 바리새인들과 달리 진실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천국(kingdom of heaven)은 하늘(heaven)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는 나라이다. 예수님 초림 때에 불완전하게 임하였고 재림 때에 완전하게 임할 나라이다. 초림 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서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2 “세례 베푸는 데로”라고 번역된 어구는 “세례를 받으러”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4:1-2)

4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사탄은 뱀(serpent)을 통해서 하와를 유혹했다. 이 뱀은 일반적인 뱀(snake)과 다르다.

5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은혜구원 대 행위구원’ 논쟁 이후로 교회는 바리새인들을 행위구원을 추구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 왔다.

6 다만 멸망당할 원수들이 이방제국들이 아니고 예수님을 거부할 사람들이며 회복될 성전이 물리적인 성전이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7 마23:2-4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9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눅18:11). 바리새인의 ‘바리새’는 ‘구별하다’ 또는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파라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10 여기서 천국은 예수님 재림 때에 임할 완전한 나라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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