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

본문: 마4:8-11

2015년 2월 15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목사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예수님에게 하나님 대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하고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한 사탄이 이제 마지막 시험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달콤하게 속삭였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 마지막 시험은 앞의 두 시험과 다릅니다. 앞에서는 사탄이 자기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께서 신이심을 인정한 채 그냥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유혹만 했습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믿으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의 두 교묘한 시험이 실패로 끝나자 이 마지막 시험에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배하도록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말고 자신을 경배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미끼를 가지고 말입니다.

뒤에서 더 살펴 보겠지만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목표는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네가 결국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이잖아. 나한테 한번 엎드려 경배해. 그러면, 이 세상 모든 나라들과 그 영광, 내 소유인 거 알지? 그거 다 너에게 줄게.”라고 유혹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탄의 이 제안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고 뺏는 것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관장하시는 일인데 사탄이 마치 자기가 하는 일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언뜻 보면 맞는 말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만물을 궁극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탄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직접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셨습니다(엡2:2; 요12:31). 그러니까 사탄에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관하는 힘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에게는 그게 유혹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뻔히 아는데 그것을 주겠다고 하면 그게 유혹이 되겠습니까? 사탄은 분명히 자신의 추종자에게 세상의 지배권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탄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권세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성경에는 바벨론과 앗시리아의 고대 지배자 니므롯이 있었고 최근에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의 궁극적인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사탄은 세상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에 따라 사탄에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른 악한 지배자들처럼 사탄의 제안을 덥썩 받아 들이셨다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예수님에게 주어졌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여느 악한 지배자들 중의 하나처럼 되었겠지만요.

사탄의 그런 간교한 유혹에 넘어가는 대신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신명기 6장 13-14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하셔서 광야로 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도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우상 숭배를 저질렀습니다(행7:42-43).1 그런데 그들이 앞으로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바알, 아세라 등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고 그 신들을 열심히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들에게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우상숭배를 했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한 후에도 광야에서 여전히 우상숭배를 자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숭배를 지속할 가능성은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당부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들이 건축하지 않은 성읍과 그들이 파지 않은 우물과 그들이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될 텐데, 그런 것들을 주신 이는 바알같은 가나안 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셨습니다(신6:10-11).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6:4-5).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가면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섬기라고 당부했습니다(6:13-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자신들을 구원해 내고 자신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자신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다면서 가나안의 온갖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참 주관자인지를 잊은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예수님의 세번째 시험에 또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메시야로서 세상의 왕이 될 것이라는 다음과 같은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2:8).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시72:11). 그러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천하만국을 받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을 텐데 천하만국을 준다는 사탄의 유혹이 과연 진짜 유혹이 될 수 있었을까? 결국은 받게 될 것을 준다는 게 무슨 유혹인가?’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보지 말고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이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은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바로 세상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한 번만 절하면 쉽게 세상을 얻을 수 있는데 뭐하러 수년간 고생하면서 사역을 하느냐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사탄의 말을 들었으면 빨리 세상을 얻으셨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온갖 기적을 일으키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을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음식을 순식간에 수십배로 늘리는데 사람들이 안 모여들고 배기겠습니까? 자신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다 쓸어 버리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메시야가 고난을 통해서 세상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긴 훈련을 참을성 있게 치러 내서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시험은 아담의 시험의 재판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따 먹도록 허락 받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못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통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아담은 아직 세상의 통치자가 되기에는 미성숙했기 때문입니다.2 세상을 통치하는 데 기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잘 다루려면 그 차를 만든 회사의 매뉴얼을 잘 따라야 합니다. 그 회사가 그 차를 만들었으니 그 차가 어떻게 해야 작동하는 지를 그 회사만큼 잘 아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잘 통치하려면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잘 알아야 하는데 그 원리를 하나님만큼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으니까요. 그러니까 좋은 통치자가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고 세상의 통치자가 되기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먼저 충실히 받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런 태도를 몸에 익히기도 전에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원하던 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기에 좋은 통치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세상에는 하나님의 원리를 거스르는 악한 통치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정한 통치자가 돼야 하는 사명을 띠고 새로운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이 통치자는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역사 가운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악한 통치자의 계보를 끊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진정한 통치자는 사탄의 달콤한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이에 사탄은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와 속마음까지 드러내며 시험했는데도 실패했으니 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떠나자 천사들이 나아와 예수님을 수종들었습니다. 40일 간의 금식과 세번의 시험을 모두 치르고 기진맥진해지신 예수님을 천사들이 와서 시중든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려서 기운을 차리시게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시험하면서 취하라고 또는 주리라고 했던 것들이 예수님께 주어진 것을 뜻합니다.3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셔서 허기를 채우셨고, 아사의 위기에서 구해내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보호 약속을 지키셨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음으로써 하늘과 땅의 통치자로서 예수님의 위엄이 드러났습니다. 신실하게 인내하면서 시험을 이기신 결과 보답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게 될 사람들로서 사탄의 유혹을 종종 받게 됩니다. 그게 돈이든 무엇이든 당장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들을 가지고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절박성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예수님의 시험 때처럼 조금만 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른 신들이 풍요를 준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유일신 사상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삶에 풍요를 가져 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우리의 힘을 믿습니다. 관념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힘을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담처럼 빨리 리더가 되고 싶어합니다. 성경지식도 풍부하겠다, 좋은 신앙서적들도 많이 읽었겠다, 지금 리더가 되어도 훌륭하게 잘 해낼 것만 같습니다. 그 긴 고난의 세월을 왜 지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배우지 않은 채 성급하게 리더의 자리에 올라 갑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지 않고 우리 생각대로 일들을 해 나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목이 곧은 사람, 교만한 사람, 독선적인 리더가 되어갑니다.

우리의 이런 죄성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임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해지셔서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들이 진 시험에서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에게 임한 똑같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채우셔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게 합시다. 그래서 사탄이 시험해 올 때마다 이겨 나갑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연하게 가신 길을 꿋꿋하게 따라 갑시다.

1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바친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2 사무엘하 14장 17절, 열왕기상 3장 9절 등을 보면 선악을 아는 것이 통치자의 자질임을 알 수 있다.

3 헤르만 리델보스, 마태복음(상), 오광만 역, 여수룬, 1990,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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