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 개관

본문: 마 5:3-12

2015년 4월 19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목사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람들의 온갖 병을 고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시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여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로 5장 3절에서 12절에서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특성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생활윤리를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위는 존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이 “어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을 가진 8개의 단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흔히들 ‘팔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팔복 즉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 내용이 보통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 웃는 자, 힘센 자를 복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온유한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 세상에다 대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아마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당신 어느 별에서 왔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은 세상의 이치와 한참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영 원리는 세상의 운영 원리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고대해서 몰려 든 사람들에게 “너희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느냐? 그러면 너희는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게 살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고 외치신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보면 무시하고 조롱할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세상을 거스르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런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오늘 본문에 ‘복이 있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μακάριος(마카리오스)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행복하다’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보통 기준에서는 오히려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심리적 상태입니다. 그러나 마카리오스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객관적인 영혼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것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하면 복된 것이고 유익하지 않으면 복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마카리오스가 행복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은 아닙니다. 누가복음에도 오늘 본문에 상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주린 자가 복된 이유는 배 부를 것이기 때문이고 우는 자가 복된 이유는 웃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눅6:21).1 어떤 사람이 지금 굶주림, 애통 등의 불행을 당하고 있더라도 결국은 배 부름, 웃음 등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면 그 사람은 복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복 되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행복하느냐 행복하지 않느냐가 기준이 아니고 장래에 행복하느냐 행복하지 않느냐가 기준입니다. 그런데 장래의 행복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장래에 우리에게 행복을 베푸실지 안 베푸실지는 우리가 현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으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행복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에 현재 삶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불행해 보여도 우리는 복된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현재 행복해 보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살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화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지금 배 부른 자는 나중에 주릴 것이기 때문에 화가 있고 지금 웃는 자는 나중에 울 것이기 때문에 화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눅6:25).2

한편, 각 복을 본격적으로 살펴 보기 전에 그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3 첫째, 팔복은 모든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특성입니다. 산상수훈이 일부 엘리트 신자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팔복은 성숙한 크리스천 또는 목사나 신부처럼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 신유 등의 은사는 특정 사람들만 가집니다. 그러나 팔복은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성숙한 신자가 아닌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하는 것처럼 팔복은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합니다. 온유함, 의에 주림, 긍휼히 여김, 화평케 함 등이 성숙한 크리스천만 가지는 특성이 아니고 모든 신자가 가져야 하는 특성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미성숙한 신자에게는 그 특성들이 약하게 나타나고 성숙한 신자에게는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성숙하다고 하더라도 신자라면 그런 특성들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무리 거듭 나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것들을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다면 여러분은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그런 특성들이 미약하나마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이 진정 크리스천인지 심각하게 돌아 봐야 합니다.

둘째, 모든 크리스천은 팔복 전체를 다 지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복을 지니고 다른 사람은 다른 복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령은 가난하지만 애통해하지는 않고 어떤 사람은 온유하지만 의에 주리지는 않고 하는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한 복의 특성을, 다른 사람은 다른 복의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각각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성화되는 모양도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이든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받았든 온유함에 있어서 더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선천적 기질의 영향이든 아니면 자라 온 환경의 영향이든 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나는 많이 온유하기는 하지만 의에 주리는 면은 약한데 옆에 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는 면은 강하지만 온유함은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함은 있는데 의에 주림은 없다거나 의에 주림은 있는데 온유함은 없는 경우란 있을 수 없습니다. 팔복은 서로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한 복의 특성은 가지고 있는데 다른 복의 특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특성은 가짜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온유하기는 한데 의에 주려 있지 않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온유함은 가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의에 주려 있기는 한데 온유하지 않다면 여러분이 주려 있는 의는 가짜입니다.

셋째, 팔복은 자연적인 특성이 아니라 성령님의 열매입니다. 팔복은 자연인에게는 나타나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 난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분명히 크리스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크리스천보다 더 온유해 보이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사람들은 왠만할 일에는 화도 내지 않고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온유함은 팔복에서 말하는 온유함이 아닙니다. 팔복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전적으로 다른 성질입니다. 팔복이 자연인에게 나타날 수 없는 특성이라는 사실은 첫번째 복을 서술하는 데서부터 드러납니다.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심령의 가난함이 자연인에게 나타날 수 있는 성질이라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성경의 내용과 완전히 모순됩니다. 그러니 심령의 가난함은 자연인에게 있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팔복이 들어 있는 산상수훈은 제자들 즉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팔복이 자연적인 특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앎으로써 팔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엉뚱하게 이해해서 자신은 팔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가지고 있다고 안심하거나 팔복을 가지고 있는데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각 복을 살펴 보기 전에 우리는 여덟 개의 각 복이 서로 관계 없이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는지 아니면 서로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미리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각 복은 서로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냥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 보지 않으면 서로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에게 나타나는 독립적인 특성들을 그냥 나열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각 복간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먼저 1-4복은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련한 자신의 상태와 태도에 관한 내용이고, 5-8복은 그 상태와 태도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림 등은 모두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상태와 태도인 반면에, 긍휼히 여김, 마음이 청결함, 화평하게 함, 의를 추구함 등은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1-4복과 5-8복은 각 복이 상응합니다. 예를 들어, 1복과 5복이 상응해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4복은 각 복들이 점진성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2복은 1복을 따라오게 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이 심령이 가난해지면 애통하게 됩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말씀 드렸기 때문에 각 복들이 참으로 이런 관계들이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각 복들을 차근차근히 살펴 보면 제가 오늘 드린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1“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 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 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3마틴 로이드존스,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집 (상), 문창수 역, 정경사 (2001), 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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