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애굽 피신

본문: 마2:1-12

2014년 10월 26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대로 동방박사들은 아주 멀리서 왔습니다. 페르시아나 바벨론은 예루살렘에서 수천km나 떨어진 아주 먼 곳입니다. 오는 시간도 굉장히 많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별은 예수님의 탄생 때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그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여행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여행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헤롯 왕은 그들이 경배하러 온 ‘유대인의 왕’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별이 나타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를 동방박사들에게 물었습니다(7절). 그리고는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최대로 잡으면 2년입니다. 헤롯이 당시 예수님의 나이를 한 살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 위 아래로 나이를 넓게 잡아서 아이들을 죽였다고 해도 1년입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은 그 먼길을 그렇게 오래 걸려서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멀리서 예수님을 경배하려 온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포함한 온 세계의 왕이시기 때문에 경배하러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멀리서 경배하러 온 또 다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즉 그들이 경배하러 온 분이 어떤 분인지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서 먼저 이 예물들이 무엇인지부터 알아 보겠습니다.

우선 황금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유향은 무엇일까요? 유향은 남부 아라비아와 소말리아 등지에서 자라는 유향나무에서 만듭니다. 유향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수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굳어진 것에서 만든 것이 유향입니다. 그리고 수액의 원래 색깔은 투명한데 밖으로 나오면서 반투명의 젖 색깔로 변하기 때문에 이름을 유향(乳香)이라고 붙였습니다. 해당 히브리어도 어원이 비슷합니다. 히브리어 단어는 ‘레보나’인데 ‘희다’라는 뜻의 ‘라반’과 어근(자음)이 lbn으로 같습니다. 레바논 산도 눈 덮인 모습이 하얘서 이름에 같은 어근 lbn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편, 유향은 의약품으로 쓰이기도 했지만(렘8:22), 향이 아주 좋아서 성경에 언급되는 주 용도는 향료입니다.1

다음으로 몰약은 남부 아라비아,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등지에서 나는 몰약나무에서 만듭니다. 이것도 유향처럼 나무의 상처에서 나오는 진액이 굳어진 것에서 만듭니다. 색깔은 원래는 노란색인데 시간이 지나면 갈색으로 변합니다. 몰약은 굉장히 좋은 향이 나지만 맛은 씁니다. 그래서 이름이 몰약(沒藥)입니다. 이 몰약의 몰은 히브리어 ‘모르’의 음역입니다. 그리고 ‘모르’는 ‘쓰다’는 뜻의 히브리어 ‘마르’와 어근(자음)이 같습니다. 몰약도 의약품으로도 쓰였지만 성경에 나오는 주 용도는 향료입니다.2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왜 예수님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 물건들이 당시에 굉장히 값비싼 귀한 물건이라서 특별한 뜻 없이 그냥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귀한 물건들 중에서 하필 왜 이 세 가지일까요? 그리고 성경은 왜 굳이 그 이름을 언급하고 있을까요? 교부 오리겐은 이에 대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3 황금을 왕에게, 유향을 하나님에게, 몰약을 필사(必死)의(mortal) 존재에게 드렸다는 것입니다. 즉 왕이시고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리지만 성경을 잘 살펴보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먼저 황금이 왜 왕과 관련이 있는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관의 재료가 금 아닙니까? 다음으로 유향은 성경에서 사람에게 사용하는 예도 나오지만 주로 강조되는 용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유향은 성전의 분향단에 쓰는 향의 주 재료 중의 하나였습니다(출30:34-38). 그리고 소제를 드릴 때 곡식 위에 얹어 같이 태움으로써 소제가 향이 되어 올라가게 했습니다(레2:1-2). 분향단의 향과 제단의 소제는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사람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같은 향료이지만 몰약은 사람에게 사용됐습니다. 몰약이 기름 부을 때 쓰는 관유(灌油)의 재료 중 하나였기 때문에(출30:22-33) 하나님을 위한 용도로 쓰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관유는 성전과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쓰인 것입니다. 게다가 몰약의 용도로 성경에 나오는 나머지 예는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게 하기 위해 쓰였고(아1:13)4, 사람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쓰였으며(막15:23)5, 사람 시체에서 나오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쓰였습니다(요19:39-40)6. 따라서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왕이시고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신 예수님께 드렸다는 오리겐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동방박사들이 과연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를 잘 모르면서 그냥 귀한 물건이니까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사 그들이 그 깊은 의미를 몰랐다고 해도 그 예물들이 상징하는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구약 때 희생제물을 열심히 드린 사람들 중 과연 누가 그 희생제물이 예표하는 것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그러나 그들이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서 그 희생제물의 깊은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동방박사들이 그 예물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정확히 몰랐다고 해도 그 예물들이 상징하는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왕)가 올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들을 떠난 하나님께서 돌아오실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둘이 하나가 되어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메시야가 와서 고난 당할 줄도 몰랐고 그 고난 당할 메시야가 하나님일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에는 이런 충격적인 내용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황금을 받으신 예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구원할 왕이셨습니다. 유향을 받으신 예수님은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셔서 같이 살려고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몰약을 받으신 예수님은 즐거움(향료로서의 몰약이 상징함)과 고통(진통제로서의 몰약이 상징함)으로 대표되는 인간사의 모든 면들을 경험하고 결국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시체에 바르는 몰약이 상징함) 참인간이셨습니다. 동방박사의 세 예물에 담긴 의미, 즉 예수님께서 왕이시요 하나님이시요 인간이신 의미가 여러분 마음 안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1 예를 들어,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아3:6).

2 예를 들어,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에2:12).

3 이하의 내용은 William Hendriksen 주석의 마태복음 2장 11절 해설을 참고하였다.

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5 “몰약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6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2 thoughts on “예수님의 애굽 피신”

  1. 아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구약에 소홀한 이유가
    우리의 역사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부정하고 싶은 역사
    청산되지 않은 채로 덮고 넘어가는 역사
    그래서 뿌리가 썩어 들어가는 데
    약 쳐서 열매만 빨갛게 만들고 있는 현실 같다고 할까요?

    과거를 돌아보는 게 힘드니까
    아예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성경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 해요…

    1. 제 설교를 늘 주의 깊게 읽어 주시고 의미 있는 평을 남겨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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