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이란

본문: 마 5:1-2

2015년 4월 12일

Christ Covenant Church 주일학교 예배

한재일 목사

 

드디어 오늘부터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5-7 장을 살펴 보게 되었 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마하트마 간디나 법정 스님같은 비기독교인까지도 깊이 영향을 받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 유명세에 비해 정작 우리 크리스천들은 산상수훈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존 스토트가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아마도 가장 잘알려져 있지만 가장 오해되고가장 지켜지지 않는 가르침이라고까지 얘기했겠습니까 ?1

자 그러면 이 어려운 산상수훈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출발점은 의의로 간단합니다. 그 배경을 잘 이해하면 됩니다. 어떤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그것을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를 잘 생각해 보면 됩니다. 산상수훈도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산상수훈은 누가 어디서 언제 누구에게 말했을까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굉장히 길지만 먼저 간단하게 답하자면, 산상수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천국이 곧 올 시점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럼 이 내용들을 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이 모세의 행적을 성취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실 때 산에 오르신 일도 그런 견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려고 산에 오르신 것을 볼 때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산에 오른 장면을 떠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유월절 밤에 장자들을 죽이심으로써 이집트를 심판하실 때 문지방에 양 피를 바름으로써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렇게 구원 받은 후 그들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모세를 매개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모세를 산 꼭대기로 불러 앞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하고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즉 거룩한 율법을 잘 지켜서 타락한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삶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빛과 인도자가 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쫓아낸 가나안 족속보다 더 타락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해서 거룩한 땅에서 쫓겨 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 즉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 갔던 바벨론에서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들 귀환자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거룩한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율법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렇게 하면 선지서에서 오리라고 예언한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 즉 천국(하나님 나라)이 이루어질 때 자신들이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킨 사람들 중에 특히 열심을 냈던 사람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학자들로서 열심히 구약을 연구해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제시했고, 열성적 율법준수자들인 바리새인들은 그것들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그들이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예상한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메시아가 언제 오시려나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홀연히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고대하고 있던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곧 자신을 이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말대로 곧 예수님께서 등장하셔서 그에게 세례를 받고 성부 하나님과 성령님의 인증을 받으심으로써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의 시험을 통해 훈련을 받으신 후 메시아로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과 달리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온갖 질병을 고치심으로써 그들이 천국의 능력을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천국복음을 듣고 천국의 능력을 맛보러 예수님께 모여 들었습니다. 모여 든 이 무리를 보시고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려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아름답고 광대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 갈 소망을 품고(출3:8) 이집트를 탈출해서 시내산 기슭에 이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에게서 받은 율법을 선포한 것과 같은 풍경입니다. 새로운 땅에 들어 가기를 고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율법을 가르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새로운 나라를 고대하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한편 그 때 모세가 선포한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내용도 하나님께서 곧 허락하실 새로운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 주는 내용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선포하신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날에 이집트에서 살던 식으로 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이집트 사람들과 구별된 방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처럼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새 땅에서는 그렇게 살면 안 될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인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할 것이었습니다.(레 20:23-24)2 이처럼 모세 당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나 라가 옛날에 그들이 살던 이집트와는 다른 새로운 나라였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천국(하나님 나라)도 유대인들이 이제까지 살던 나라와는 다른 나라입니다. 그러니 새 나라에서는 옛날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새 나라의 성격에 맞게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구약 때의 이스라엘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옛날 모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방인들과 구별되어서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마 5:47; 6:7, 31-32)3 이스라엘의 열성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도 구별되어서 살아야 합니다(마5:20; 마 6:2, 5, 16)4

이렇게 산상수훈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내용이므로 우리는 산상수훈을 해석하는 두 극단 중 하나를 배격해야 합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산상수훈이 우리가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이상적인 내용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의 한계를 깨달아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아가게 할 목적으로 산상수훈을 주셨다고 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오른 쪽 뺨을 맞고서 왼쪽 뺨을 돌려 댈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마5:1).5 이런 사실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말들을 듣고 행하는 자를 칭찬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마7:24, 25).6 만약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주셨다면 왜 그런 이상한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서 구원을 받으라고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유월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문지방에 양 피를 발라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을 주실 때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아가 구원을 받으라고 주시지 않았습니다. 산상수훈을 받은 사람들은 제자들, 즉 이미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그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 율법이 구원으로 이끄는 인도자가 아니고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내용인 것처럼 산상수훈도 구원으로 이끄는 인도자가 아니고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7 모세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차 들어갈 나라 즉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할 내용인 것처럼 산상수훈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차 들어갈 나라 즉 하나님 나라에서 지켜야 할 내용입니다.

한편 우리는 산상수훈에 대한 해석 중 반대쪽 극단도 배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상수훈은 노력하면 쉽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산상수훈은 지키라고 주어졌고 사람들이 그것을 문자적으로 지켜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아무나 지킬 수 있는 교훈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이 될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성령님의 강림으로 이루어질 나라입니다. 구약 때의 이스라엘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 임할 하나님 나라는 구약 때의 이스라엘과는 다른 나라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이스라엘과 관계 없는 나라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새롭게 된 나라여야 하기 때문에 그 나라는 이스라엘의 죄가 처리됨으로써 세워지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한 과거 이스라엘과 달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셔서 이스라엘이 새롭게 된 나라여야 하고, 그 나라는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도록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 나라 백성의 심령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나라여야 합니다. 따라서 그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 예수님을 자기 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산상수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들은 산상수훈을 지킬 수 없고 이 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이 지킨다는 의미가 산상수훈이 말하는 것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는 데 흠이 없는 자’라는 표현이 그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산상수훈을 지킨다는 것이 그 내용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두 경우 다 지키다 실패하면 회개하고 다시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또 실패하면 회개하고 다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론적으로 산상수훈은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곧 올 것을 선포하시면서 그 나라의 구성원이 될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내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8 앞으로 그 내용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 John Stott, The Message of the Sermon on the Mount (IVP, 1978), 15.

2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4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6“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들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7물론, 어떤 불신자에게는 모세율법이나 산상수훈이 절망을 일으키는 높은 기준으로 작용해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주신 근본 목적은 아니다. 그것들이 그렇게 작용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것들의 부차적 역할일 뿐이다.

8존 스토트는 그의 책 The Message of the Sermon on the Mount 24-26쪽에서 산상수훈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크리스천의 자질(5:3-12), 세상에 대한 크리스천의 영향(5:13-16), 크리스천의 의(5:17-48), 크리스천의 경건(6:1-18), 크리스천의 야망(6:19-34), 크리스천의 관계(7:1-20), 크리스천의 헌신(7:21-27).

1 thought on “산상수훈이란”

  1. 목사님의 균형잡힌, 통전적, 현대적 산상순훈을 접할 기회를 누릴 수 있어 기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